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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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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인규는 1958년 경기도 용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임용되었다. 서울지방검찰청, 춘천지방검찰청, 부산지방검찰청 등에서 근무했으며, 법무부 국제법무심의관실 검사, 주미국대사관 법무협력관 등을 역임했다.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거쳐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변호사이인규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 수수 혐의 수사를 지휘했으며, 수사 과정과 결과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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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법조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이인규
원어명李仁圭
출생일1958년 1월 22일
출생지대한민국 경기도 용인
거주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정당무소속
학력미국 코넬 대학교 대학원
웹사이트보트 비전
공직 경력 1
임기2001년 1월 3일 ~ 2002년 1월 3일
국가법무부
직책검찰 제2과 과장
대통령김대중
총리이한동 국무총리
장관김정길 법무부 장관
안동수 법무부 장관
최경원 법무부 장관
송정호 법무부 장관
차관김경한 차관
김학재 차관
신광옥 차관
소병철 차관 직무대리
김승규 차관
공직 경력 2
임기2002년 1월 4일 ~ 2002년 4월 17일
국가법무부
직책검찰 제1과 과장
대통령김대중
총리이한동 국무총리
장관송정호 법무부 장관
차관김승규 차관
공직 경력 3
임기2006년 1월 5일 ~ 2007년 9월 19일
국가서울중앙지방검찰청
직책제3차장검사
대통령노무현
대표정상명 검찰총장
총리이해찬 국무총리
한덕수 총리 권한대행
한명숙 국무총리
권오규 총리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
장관천정배 법무부 장관
김희옥 장관 직무대리
황희철 장관 직대 서리
김성호 법무장관
차관김희옥 차관
황희철 차관 직무대리
정동기 차관
정진호 차관
공직 경력 4
임기2009년 1월 8일 ~ 2009년 7월 14일
국가대검찰청
직책중앙수사부 부장
대통령이명박
총리한승수 국무총리
대표임채진 검찰총장
문성우 총장 직무대리
부대표권재진 대검찰청 차장검사
문성우 대검찰청 차장검사
장관김경한 법무부 장관
차관문성우 차관
김수남 차관 직무대리
이귀남 차관
최재경 차관 직무대리
기타 정보
경력법조인 출신
대검찰청 기획조정부 부장

2. 약력

2. 1. 검사 임용 및 주요 경력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했다. 이후 검사로 임용되어 활동했다. 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다.

연도내용
1985년 ~ 1987년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87년 ~ 1988년춘천지방검찰청 속초지청 검사
1988년 ~ 1990년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1990년 ~ 1991년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1991년 ~ 1992년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 직무대리
1993년 ~ 1994년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1994년법무연수원 연구위원
1994년 ~ 1996년법무부 국제법무심의관실 검사
1996년 ~ 1997년대구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1997년 ~ 1999년주미국대사관 법무협력관
1999년 ~ 2001년법무부 검찰4과장
2001년 ~ 2002년법무부 검찰2과장
2002년법무부 검찰1과장
2002년서울지방검찰청 형사9부장검사
2003년서울지방검찰청 금융조사부장검사
2003년 ~ 2004년춘천지방검찰청 원주지청
2005년 ~ 2006년서울고등검찰청 검사
2006년 ~ 2007년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3차장검사
2007년 ~ 2008년대전고등검찰청 차장검사
2008년 ~ 2009년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2009년 1월 ~ 7월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2009년 ~ 2017년 7월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2010년한국토지주택공사 (LH) 법률고문
이후변호사이인규법률사무소


3.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

이명박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이명박이 1999년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검찰 파견직으로 워싱턴 영사관에서 일하며 당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신재민의 소개로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1] 신재민조선일보를 거쳐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임명되었고, 이인규는 검찰 요직인 중수부장에 임명되어 모두 정권의 실세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이번 수사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은 배제되고 이 부장이 청와대와 직접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4. 인맥

이명박 정부에서 요직을 맡은 정동기 민정수석, 이상득 의원의 전 비서실장이자 안국포럼 출신인 장다사로 민정비서관과 함께 경동고등학교 동문으로 친분이 있다.[2][3]

5.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이인규는 6월 12일 '박연차 리스트'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를 '뇌물수수'로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역사적 진실'은 수사기록에 남겨 보존하겠다고 했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며 수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에 문재인 변호사는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두 번 욕보이는 행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변호인단은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 이번 수사결과 발표는 책임 회피와 자기 변명으로 일관됐다고 비판했다.[9]

2011년 6월 23일 민주당 김동철 의원이 공개한 '사건위임계약서'에 따르면, 법무법인 '바른' 소속 정동기 전 민정수석과 이인규는 2011년 4월 부산저축은행 변호를 맡는 조건으로 착수금 3억을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의뢰인은 부산저축은행그룹 박연호 회장, 김민영 부회장, 김양 부회장, 강성우 감사 등 4명이었다. 정동기와 이인규는 최고 9억원대의 성공보수도 약속받았던 것으로 나타나 전관예우 논란이 일었다. 법무법인 바른은 부산저축은행 사건 피해자들의 항의로 뒤늦게 변호 계약을 취소했다.

2015년 1월, 이인규와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우병우 당시 중수1과장이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으로 내정되자, 이인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진술은 국정원의 조작이며, 당시 국정원은 대검에 망신주기 언론플레이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국정원이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므로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여 다시 한번 뉴스가 되었다.[10][11] 우병우박근혜 정부 민정수석 재임 기간 불법적인 재산 증식, 넥슨코리아 부동산 매입 논란, 정운호 몰래 변론 의혹[12][13] 등으로 끊임없는 의혹의 중심에 있었다.

5. 1. 수사 배경 및 초기 과정

이인규는 검찰 특수부 주요 보직을 거치지 못했지만, 2009년 1월 대검 중수부장이 되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 수사를 지휘했다.[4]

이 수사는 2008년 7월 국세청 한상률 전 청장이 조사4국을 시켜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한 후, 박연차와 노 전 대통령 가족 간의 돈거래 내용을 이상득 의원에게 보고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의혹이 있다.[5] 박연차는 2008년 12월 검찰에 구속될 당시에는 입을 다물었지만, 검찰이 외아들의 병역기록을 검토하고, 장녀를 비롯한 세 딸과 사위를 출국금지하고 소환했으며, 상속세 탈세 혐의를 검토하자 결국 수사에 협조했다.[6] 검찰은 이때 박연차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의 거래를 퇴임 후 사적 거래로 판단했다.

그러나 몇 개월 후 검찰 인사 이후 이인규, 홍만표 등이 합류하면서 수사팀이 다시 꾸려졌다. 이인규는 이전 검찰의 수사기록을 재검토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이후 주변 인물 및 일가족의 줄소환이 시작되었고, 2009년 4월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중수부의 조사를 받았다. 4월 30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했다. 당시 검찰청사에서 전직 대통령을 내려다보며 웃는 몇몇 검사의 모습이 카메라에 찍히기도 했다. 문재인 변호사는 조사실에서 이인규 중수부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대단히 건방졌으며,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 회고했다.[7]

2009년 5월 13일, 권양숙 여사가 회갑 선물로 받은 억대 고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검찰에서 증언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홍만표 기획관은 '검찰 내 빨대(내부 취재원을 뜻하는 언론계 은어)를 색출해 처벌하겠다'고 격앙되게 반응했지만 흐지부지 끝났다.[5] 이인규는 임채진 검찰총장 등과 함께 민주당과 시민에 의해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하였다.[8]

5. 2. 수사 진행 및 논란

이인규는 검찰 특수부 주요 보직을 거치지 못했지만, 2009년 1월 대검 중수부장이 되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 수사를 지휘했다.[4]

이 수사는 2008년 7월 국세청 한상률 전 청장이 관할이 아닌 조사4국을 시켜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한 후 박연차와 노 전 대통령 가족 간의 돈거래 내용을 이상득 의원에게 보고하며 시작되었다는 의혹이 있다.[5] 검찰에 구속될 당시 박연차는 "모든 것을 내가 안고 가겠다"며 입을 다물었지만, 검찰은 박연차 회장의 가족을 압박하여 수사 협조를 받아냈다.[6] 이때 검찰은 박연차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의 거래는 퇴임 후 사적거래라 판단하였다.

그러나 몇 개월 후 검찰 인사 이후 검찰 수사팀이 다시 꾸려졌고, 이인규, 홍만표 등이 합류하였다. 이인규는 이전 검찰의 수사기록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주변 인물 및 일가족의 줄소환이 시작되었고, 2009년 4월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중수부의 조사를 받았다. 4월 30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했다. 이 당시 검찰청사에 도착한 전직 대통령을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며 웃음짓는 몇몇 검사가 카메라에 찍혀서 유명해졌다. 문재인 변호사는 조사실에서 이인규 중수부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오만하고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고 회고했다.[7]

2009년 5월 13일, 권양숙 여사가 회갑 선물로 받은 억대 고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검찰에서 증언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홍만표 기획관은 '검찰 내 빨대(내부 취재원을 뜻하는 언론계 은어)를 색출해 처벌하겠다'고 격앙되게 반응하였지만 흐지부지 끝났다.[5] 이인규는 임채진 검찰총장 등과 함께 민주당과 시민에 의해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하였다.[8]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이인규는 6월 12일 '박연차 리스트'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는 '뇌물수수'로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역사적 진실'은 수사기록에 남겨 보존하겠다고 하였고, 수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에 문재인 변호사는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두 번 욕보이는 행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9]

2011년 6월, 이인규는 법무법인 '바른' 소속으로 부산저축은행의 변호를 맡아 착수금 3억을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전관예우 논란이 일었다.

2015년 1월, 이인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진술은 국정원의 조작이었으며, 당시 국정원은 대검에 망신주기 언론플레이를 제안하였다고 주장했다.[10][11]

5. 3.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수사 종결

2009년 1월, 이인규는 대검 중수부장이 되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다.[4]

이 수사는 2008년 7월 국세청 한상률 전 청장이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한 후 박연차와 노 전 대통령 가족 간의 돈거래 내용을 이상득 의원에게 보고하며 시작되었다는 의혹이 있다.[5] 검찰은 박연차 회장의 가족을 압박하여 수사 협조를 받아냈고, 이 과정에서 박연차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거래는 퇴임 후 사적거래라 판단하였다.

그러나 검찰 인사 이후 이인규, 홍만표 등이 합류하며 수사팀이 재편되었고, 이전 검찰의 수사기록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 및 일가족이 줄소환되었고, 2009년 4월 12일 권양숙 여사,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조사실에서 이인규 중수부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오만하고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고 회고했다.[7]

2009년 5월 13일, 권양숙 여사가 억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홍만표 기획관은 '검찰 내 빨대(내부 취재원) 색출'을 언급했지만 흐지부지되었고, 검찰 내에서는 그가 말한 ''''더러운 빨대''''가 윗선이어서 그랬다는 소문이 있었다.[5] 이인규는 임채진 검찰총장 등과 함께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하였다.[8]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이인규는 6월 12일 '박연차 리스트'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를 '뇌물수수'로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역사적 진실'은 수사기록에 남겨 보존하겠다고 하였다. 문재인 변호사는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두 번 욕보이는 행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9]

2015년 1월, 이인규는 국정원이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며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10][11]

5. 4. 수사 이후 논란

이인규는 검찰 특수부 주요 보직을 거치지 못했으나, 2009년 1월 대검 중수부장이 되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 수사를 지휘했다.[4]

이 수사는 2008년 7월 국세청 한상률 전 청장이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한 후 박연차와 노 전 대통령 가족 간의 돈거래 내용을 이상득 의원에게 보고하며 시작되었다는 의혹이 있다.[5] 검찰은 박연차 회장 가족을 압박해 수사 협조를 얻어냈고, 초기에는 박연차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거래를 퇴임 후 사적 거래로 판단했다.

그러나 검찰 인사 이후 이인규, 홍만표 등이 합류하면서 수사팀이 다시 꾸려졌고, 이전 검찰의 수사 기록을 재검토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이후 주변 인물 및 일가족의 줄소환이 시작되었고, 2009년 4월 12일 권양숙 여사,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문재인 변호사는 조사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의 태도가 매우 건방졌다고 회고했다.[7]

2009년 5월 13일, 권양숙 여사가 억대 고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증언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홍만표 기획관은 '검찰 내 빨대(내부 취재원)를 색출해 처벌하겠다'고 격앙되게 반응했지만 흐지부지 끝났다.[5] 이인규는 임채진 검찰총장 등과 함께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했다.[8]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이인규는 '박연차 리스트'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를 '뇌물수수'로 밝혔지만,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문재인 변호사는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9]

2011년, 이인규는 정동기 전 민정수석과 함께 부산저축은행 변호를 맡아 착수금 3억을 받는 계약을 체결하여 전관예우 논란이 일었다.

2015년 1월, 이인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진술은 국정원의 조작이었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10][11]

참조

[1] 웹사이트 한국경제 - 이인규 중수부장, 이젠 정치권의 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1999년부터 각별한 인연, 국정원장은 임 검찰총장 무시하고 이 중수부장에게 메시지 전달 https://web.archive.[...] 2009-06-09
[2] 뉴스 (정동기 민정수석) 검찰서 바로 수석…관계 긴밀해 질듯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3] 뉴스 ‘보이지 않는 손’ 당·청 이상득 계보 http://newsmaker.kha[...] 경향신문
[4] 뉴스 지연·학연 얽힌 ‘패거리 조직문화’ 수술해야 http://hani.co.kr/ar[...] 한겨레신문
[5] 뉴스 법무부 장관과 대검 중수부장 언제까지 버티려나 https://news.v.daum.[...] 다음 뉴스
[6] 뉴스 또 장남 압박 카드 千회장 입도 열까 http://www.seoul.co.[...] 서울신문
[7] 뉴스 “문성근씨 2003년 대통령 친서 가지고 방북쇠고기협상 FTA뒤로 연기, 이대통령도 공감” http://hani.co.kr/ar[...] 한겨레신문
[8] 웹사이트 민주당,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등 3명 검찰에 고발, 법률신문 https://www.lawtimes[...] 2015-03-05
[9] 뉴스 [취재현장] 박연차 수사 종결 http://news.kbs.co.k[...] KBS 뉴스
[10] 뉴스 원세훈 때 ‘노무현 죽이기’… “국정원 행태, 빨대(익명 취재원) 아닌 공작 수준” http://news.khan.co.[...] 경향신문
[11] 뉴스 이인규 “국정원, 노무현 수사 내용 과장해 언론에 흘렸다” http://news.khan.co.[...] 경향신문
[12] 웹사이트 http://www.ytn.co.kr[...]
[13] 웹사이트 http://news.kha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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